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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노헤 10가지 이야기
3 역사

[조몬과 난부의 낭만의 마을]

조몬시대부터 에도시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치노헤는 이 지방의 거점으로서 번영했습니다. 그 역사나 문화는 현재의 하치노헤에도 이어져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치노헤의 조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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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만년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하치노헤 지방. 조몬시대에는 조몬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고레카와 유적이나 가자하리 유적 등에서 발굴된 수많은 출토품, 대규모의 촌락 흔적이 나타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번영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국호「合掌土偶(합장 토우)」를 비롯한 예술성 높은 출토품이 많은 것도 특징. 출토품은 하치노헤시 매장 문화제 센터 고레카와 조몬관에 전시되어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전하고 있습니다.

戸 (노헤)의 성립

아오모리현의 남부에서 이와테현의 북부까지 남아있는 「戸(노헤)」가 붙는 지명. 「戸(노헤)」는 집락이나 행정구획을 의미하며 히라이즈미의 오슈 후지와라 씨의 지배 속에 성립되었다고 생각됩니다. 「 戸(노헤) 」는 말의 목장이라는 설도 있으며 에조를 지배하기 위한 기지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오모리현의 남부에서 이와테현의 북부까지 남아있는 「戸(노헤)」가 붙는 지명. 「戸(노헤)」는 집락이나 행정구획을 의미하며 히라이즈미의 오슈 후지와라 씨의 지배 속에 성립되었다고 생각됩니다. 「 戸(노헤) 」는 말의 목장이라는 설도 있으며 에조를 지배하기 위한 기지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치노헤∙∙∙이와테현 이치노헤쵸
니노헤∙∙∙이와테현 니노헤시
산노헤∙∙∙오아모리현 산노헤쵸
고노헤∙∙∙아오모리현 고노헤쵸
로쿠노헤∙∙∙아오모리현 로쿠노헤쵸
시치노헤∙∙∙아오모리현 시치노헤쵸
하치노헤∙∙∙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
구노헤∙∙∙이와테현 구노헤무라

※시노헤는 존재하지 않지만 하치노헤시 하치만의 구시비키 하치만구 신사 주변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치노헤에 전해지는 「요시쓰네 북행전설」

하치노헤 시내에는 헤이 씨 타도의 주역・ 미나모토노 요시쓰네가 들렀다고 전해지는 장소가 옛날부터 있으며 8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설로 시민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치노헤의 조상 네조 난부 씨

shiseki_nejo1 하치노헤와 난부 씨의 관계는 남북조시대 가이노쿠니(현재의 야마나시현)의 난부모로유키가 네조를 거점으로 네조 난부 씨를 연 것이 시작이라고 전해집니다. 이후 네조 난부 씨는 하치노헤 지방을 통치함과 동시에 난부 씨의 총령인 산노헤(모리오카) 난부 씨의 중신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1334년에 축성된 네조성은 본성 등 8개의 구획으로 되어진 평성이며 1627년에 도노로 이봉되기까지 약 300년간 하치노헤 지방의 중심으로 번영했습니다. 네조 성터는 [사적 네조의 광장]으로 복원되어 아즈치 모모야마시대의 네조의 모습을 현재에 전하고 있습니다.

하치노헤한의 탄생 그리고 하치노헤시로

에도시대에 들어서면 네조 난부 씨는 모리오카한 초대 한주・난부 도시나오에 의해 도노로 이봉되어져 영주를 잃은 하치노헤는 모리오카한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 놓여졌습니다. 도시나오는 교통이나 교역의 요충이었던 하치노헤의 정비를 스스로 행하여 현재에도 市日町(장날을 동 이름으로 한 것)가 특징적인 구성의 기초가 이때에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모리오카한2대 한주 시게나오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에도에서 서거하였기 때문에 1664년에 막부는 시게나오의 동생에게 모리오카한의 8만석을, 둘째 동생인 나오후사에게는 하치노헤한 2만석을 주어서, 하치만한은 독립된 한이 되었습니다. 그 후, 기근이나 재해를 여러 번 겪으면서 하치노헤한은 9대까지 이어져 그 강인함은 메지시대의 하치노헤현, 쇼와의 하치노헤시 탄생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우측도는 「文久改正 八戸御城下 略図(분큐 개정 하치노헤성하 약도)」 화상 클릭으로 확대표시)

Column「「하치노헤에 있는 3개의 국보」」

合掌土偶

국보 「合掌土偶(합장 토우」

 양 무릎을 세워 앉아 손바닥을 맞댄 모습의 토우(흙인형). 그 사실적인 모습은 조몬시대 당시의 풍습을 보여주며 자손대대 번영 같은 다양한 소원에 대한 ‘기도’가 느껴집니다.

 다른 토우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진귀한 모습이고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어졌다는 것, 토우 형상이 당시의 풍속을 생각하기 위해서 아주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2009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3500년전 조몬시대 후기 후반.
가자하리(소장/고레카와 조몬관


국호 「赤糸威鎧」(아카이토 오도시 요로이 갑옷)

 가마쿠라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갑옷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갑주 중 하나로 불립니다. 소매와 투구에 菊一文字(국화) 의 장식이 있어 「菊一文字(국화)의 갑옷」으로도 유명합니다.
(소장/구시히키 하치만구 신사


국호 「白糸威褄取鎧」 (시로이토 오도시 쓰마도리 요로이 갑옷)

 남북조시대의 대표적인 갑옷으로 흰 실을 바탕 실로 하여 보라, 연보라, 노랑, 녹황, 적색 등의 실로 수놓은 모양은 높은 기품이 느껴집니다. 내조 난부 씨・난부 노부미쓰공이 고무라카미 천황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소장/구시히키 하치만구 신사

CONTENTS

특집 바닷바람을 느끼며 다네사시 산책
움직이는 하치노헤